역사이야기

조선 태조, 이자춘의 아들 이성계의 전면 등장

Brave David 2014. 2. 20. 20:12

 

 

 

 

조선 태조이야기, 이성계의 등장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뒤(태조 4년)

 

이안사는 목왕에, 행리는 익왕에, 춘은 도왕에 추존되었고 이자춘은 환왕에 추존되었습니다. 그리고 태종 시대에 이르러 선조들이 목조, 익조, 도조에 추존될 때 이자춘은 다시 환조로 추존되었습니다. 이자춘의 능은 정릉(定陵)으로, 함흥 동쪽의 귀주동(歸州洞)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자춘의 아들 이성계

 

1355년 두만강변의 화령부(영흥)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자춘과 최한기의 딸 최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담대했으면 특히 궁술에 뛰어났습니다.

 

이성계가 성년이 될 무렵인 14세기 중반의 중원은 명이 일어나 원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만주 지역에서는 여진족이 원의 세력이 약해지는 틈을 타서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쪽에서는 왜구들의 노략질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한반도와 중국의 양민들은 전쟁의 불안과 공포에 시달려야 했고 따라서 문인보다는 무인이 대접을 받는 이시기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성계는 그러한 시기에 걸맞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스무살도 되기 전에 이미 동북면 지역에서 뛰어난 궁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아버지 이자춘과 함께 고려의 옛 땅이자 원의 점령지인 쌍성 지역에서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진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려가 이자춘의 도움으로 쌍성에 있던 원의 총관부를 함락시킨 후에는 고려 변방을 지키는 주역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성계의 등장 계기

 

1360년 고려의 관리가 된 지 4년 만에 이자춘이 병으로 죽자 이성계는 사병을 육성하여 동북면 지역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갔으며, 이듬해 10월 독로강의 만호인 박의가 난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면서 공민왕의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같은 해에 홍건적이 고려를 침입하여 개경이 함락될 지경에 이르자 그는 사병 2천 명을 거느리고 수도 탈환 작전에 참가해 가장 먼저 입성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1362년에 원의 나하추가 수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홍원 지방으로 쳐들어오자 고려는 비로소 이성계에게 동북면병마사 벼슬을 제수하여 나하추 부대에 응전케 합니다. 이로써 이성계는 27세의 나이에 문무를 겸비한 고려의 주목받는 관리로서 역사 전면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